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단 하루라도 존중받는 몸으로 살고 싶다”
체중계 숫자로 정해지는 내 몸의 계급
신분 상승을 위한 목숨 건 다이어트가 시작된다!
그늘을 만들었던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고 마치 조명이 켜진 듯 주변이 환해졌다. 그 환한 공기 속에서 운남의 모습은 더 처참했다.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새어 나온 날카로운 한 줄기 햇빛이 긴 칼처럼 운남의 정수리를 내리꽂았다. _본문 중에서
이토록 서늘한 절정을 본 적이 없다.
신선한 감수성과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심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은
권여름의 첫 장편소설!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의 첫 대상 수상작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가 출간되었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유리 단식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살을 빼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요즘 시대 ‘몸’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심사위원 전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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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목소리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보이는’ 것에 익숙한 요즘, 몸에 대한 욕망은 갈수록 더 커지고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마르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서 다이어트에 열을 올린다. 소설은 이런 다이어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신드롬과 같은 이 현상에 대한 위험한 부작용을 정확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더불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의 내면 풍경을 세밀한 필치로 묘사해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안전한 세계 ‘유리 단식원’의 허상
건강하게 살을 빼준다는 ‘유리 단식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절박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 중심에 주인공 양봉희가 있다. 연달아 실패한 입시와 취업. 그 모든 원인은 뚱뚱한 몸에 있었다. 봉희는 어쩔 수 없이 대학 입학도 미룬 채 반도체 회사 생산라인에 들어간다. 2교대의 피로한 삶에서 유일한 낙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80kg대의 몸은 서서히 불어 100kg에 육박했고, 체중계의 숫자가 주는 커다란 무게감은 점점 봉희를 압박한다. 봉희는 그 즉시 사직서를 내고 유리 단식원을 찾아간다.
봉희에게 유리 단식원은 안전한 곳이다. 살을 빼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태프로서 또 다른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 단식원에서 ‘Y의 마지막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봉희의 이 안전한 세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봉희의 팀원인 운남이 주인공으로 뽑히면서 승승장구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첫 촬영을 앞두고 사라진 것이다. 프로그램 주인공은 운남에서 아이돌 연습생 홍안나로 교체된다. 하지만 봉희는 여전히 운남이를 찾아 헤매고, 건강하게 살을 빼준다던 ‘유리 단식원’을 향한 의심은 점점 커지는데…….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급격히 떨어지는 자존감
“살찐 몸은 낮은 신분과 같다”
“살찐 몸은 마치 낮은 신분과 같았다.” 독백처럼 흐르는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동시에 이 시대의 세태를 정확히 꼬집고 있다.
전교 1등이지만 입시와 취업 면접에서 탈락한 봉희, 아이돌 연습생이지만 데뷔 순위에서 밀려버린 안나, 비건 동아리에 들었다가 제대로 망신당한 운남. 이들에게 뚱뚱한 몸으로 사는 일은 매 순간 좌절과 모멸감을 경험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패배감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단식원으로 향한다. 마치 마지막 것까지 다 털어서 배팅을 하는 도박꾼처럼.
더 마르고 더 예쁜 것을 추구하는 시대, 다이어트는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고 SNS에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드러나는 존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 살찐 몸으로 산다는 건 낮은 신분으로 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PR 시대라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게 ‘좋아요’와 ‘팔로우’ 수로 판단되어지는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라
사슴의 뿔처럼 함께 가면 더 아름답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타인의 시선을 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어쩌면 인간이 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몸은 곧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중받는 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도 존중받으며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변하면 자신의 삶도 달라질 것 같던 봉희가 마침내 맞이한 이 진실은, 외모로 평가당하는 현 시대에서 당당히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봉희도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입장할 수 있었다.
결국 건강한 다이어트는 남에게 존중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내 몸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어디선가 힘겹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신을 존중하며 이 시간을 통과하기를. 그래서 새로운 삶을 만끽하며 세상 앞에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작가는 어쩌면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필요는 없다. 운남이 봉희에게 간절히 살고 싶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봉희에게도 그런 친구가 필요했던 것처럼 사슴의 뿔처럼 함께 가면 더 아름다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고.